지구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기후가 점점 뜨거워지면서 전 세계의 생태계가 무너지고 인프라가 파괴되며 인류와 동료 생물들의 거주와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전례 없는 기후 재난과 대량 멸종 위기에 직면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세계적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이 회복력 시대를 맞아 지구와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재설정할 새로운 질서를 제시한다. 인간은 땅이 아니라 물의 행성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제 지구의 수권(水圈)이 온난화의 여파로 새로운 균형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리프킨은 수권의 재배치에 따라 인류의 6000년 도시 수력 문명이 막을 내리고 신유목 시대와 임시 사회(ephemeral society)가 부상할 것이라 말하며, 이에 따라 산업, 경제, 사회, 정치, 교육 등 삶의 전 영역에 도래할 변화상을 안내한다.
2024년 9월 3일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주요 국가에서 동시 출간한『플래닛 아쿠아』는 글로벌 경제와 산업 구조, 기술과 에너지 혁명, 기후 변화, 거버넌스 등 50년에 걸친 리프킨의 연구를 집대성해 기후 위기 담론의 다음 장을 펼치는 획기적 여정으로 독자를 이끈다. 물 스트레스국가로 분류되며(FAO 물 스트레스 수준 보고서) 에너지와 반도체를 주요 산업으로 보유한 한국에서도 주목해야 할 논의다.
도시 수력 문명의 탄생: 물을 가둔 인류
인간이 플래닛 아쿠아, 즉 물의 행성에 산다는 인식은 왜 중요한가? 물이 생명의 원천이라는 근본적인 사실 외에도, 인류 문명을 쌓아 올린 사회와 경제 체계, 거버넌스 상당 부분이 수자원 인프라와 밀접하게 엮여 있기 때문이다. 문명이 태동한 이래 인간과 자연계의 상호작용에서 일어난 중대한 변화는 지구의 수권이 선도한 인프라 혁명으로 기록할 수 있다.
수자원 인프라의 등장은 인류 역사에서 중차대한 전환점이다. 약 6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도의 인더스 계곡, 중국 황허, 그리고 훗날 로마제국에서 지구의 물을 독점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동료 생물들과 다른 길을 택했다. 인류의 조상들은 물을 활용하고 재배치하는 정교한 기술을 도입해 인간의 시간적, 공간적, 사회적 우선순위에 맞춰 물을 ‘길들이기’ 시작했다. 댐과 인공 저수지를 건설하고, 제방과 둑을 쌓고, 운하를 파서 물을 격리하고 사유화하고 상품화했다. 인간의 필요와 열망을 충족하기 위해 수권을 굴복시키자 잉여 식량이 대폭 증가했고 논밭에 필요한 일손이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밀집한 지역으로 인구가 이동했다. 도시 지역이 확장하고 경제생활이라는 이전에 없던 현상이 나타났다. 농부들을 동원하는 것부터 곡물 운송・저장・분배, 상거래 관리, 세금 징수, 운하 청소, 국경 방어를 위한 군대 유지까지 생산과 행정을 관리할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정치적 통제와 전문 직무에 종사하는 전문 노동자가 탄생했다. 도시 수력 문명의 시작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물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지난 6000년 동안 수그러들 기색 없이 계속되었다. 수력 문명은 특히 지난 2세기 동안 화석연료 기반의 산업화 시대를 맞아 절정에 달했다. 19세기 후반부터 2020년까지 수력발전 댐과 인공 저수지, 파이프, 펌프 시스템이 기록적인 수치로 구축되면서 수자원 인프라가 가장 크게 확장되었다. 현재 지구상 인류 대다수가 도시 공동체에 밀집해 살고 2014년 기준 전 세계 400개 이상의 도시에 각각 100만~3800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거주하는데, 복잡하게 얽힌 수자원 인프라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이 설계하고 배치한 이 인프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 6000년 역사 동안 도시 수력 문명의 성장과 몰락, 재성장이 인간의 여정을 정의해 왔으며 인류가 지구의 지배 종으로 부상한 데는 수력 문명의 뒷받침이 있었다.
말라 가는 지구, 진행 중인 익사
풍성한 수확과 잉여 생산을 확보하기 위해 물을 격리하고 통제한 것은 작은 도약이었지만 그 결과는 산업 수자원 인프라를 통해 인류와 자연의 관계를 바꿀 정도로 획기적이었다. 그러나 수력 유토피아의 꿈, 자연을 인간의 요구에 맞춰 조정하는 사치는 이제 영원히 끝났다. 따뜻해 지는 지구에서 수권이 지금까지 상상도 못 한 방식으로 재야생화되면서 우리를 여섯 번째 대멸종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북극과 남극의 해빙, 강력한 대기천의 출현, 해류의 변화, 잦아지는 대홍수, 가뭄과 폭염의 장기화, 산불의 확산, 강력한 허리케인과 태풍은 수권이 야생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명백한 징후다. 과학자들은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 종의 50퍼센트 이상이 향후 80년 이내에 멸종 위기에 처할 것으로 본다.
화석연료 기반의 산업 문명, 즉 물-에너지-식량 넥서스가 초래한 온난화로 지구의 담수는 전세계적으로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강과 호수가 마르고, 전 세계 수자원 인프라 네트워크를 구성하던 댐과 인공 저수지가 사라지고 있다. 세계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0년 동안 1인당 담수량은 절반으로 줄었다.” 지구상에 남아 있는 담수의 70퍼센트가 관개에 쓰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현실은 더욱 무섭게 다가온다. 수력 문명의 이 마지막 시대에 쌀, 밀, 옥수수, 대두 등 주요 곡물이 전 세계 식량 작물에 할애되는 담수의 59퍼센트를 소비하고 있다. 막대한 양의 냉각수가 필요한 화력발전과 원자력발전도 담수 고갈의 주원인이다.
인간의 생존과 식량 생산, 사회생활에 필수적인 물이 마르면서 수자원 인프라 대부분이 ‘좌초 자산’으로 바뀔 위험에 처해 있다. 세계기상기구(WMO) 보고에 따르면 화력, 원자력, 수력 발전에서 생산된 전 세계 전력의 75퍼센트가 수자원에 직접적으로 의존한다. 이미 화력발전소의 33퍼센트, 원자력발전소의 15퍼센트, 수력발전소의 11퍼센트가 물 스트레스가 높은 지역에 있으며 이 비율은 늘어날 것이다. 중국과 인도에만 75년 이상 된 노후한 대형 댐이 2만 8000개에 이르러 수백만 명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고 2023년 리비아에서는 폭우로 와디데르나강 댐 2개가 무너지며 수천 명이 목숨을 잃는 비극이 발생했다. 야생으로 돌아가는 수권은 더욱 거세질 기후 재난과 함께 향후 75년간 세계의 수자원 인프라 전체를 파괴할 것이고 세계 곳곳의 도시와 지역이 유실 위험에 처할 것이다.
화석연료와 원자력에서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물 집약적인 환금작물과 가축 사료용 곡물 생산에서 물 절약적인 덩이뿌리・덩이줄기 작물 생산으로, 즉 진보 중심의 인프라에서 회복력 지향 인프라로 물-에너지-식량 넥서스의 전면적인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미 ‘그린 뉴딜’을 선도한 유럽연합(EU)은 물의 전략적 우선순위를 인식하고 다음 도약을 위해 ‘블루 뉴딜’ 의 기치를 세우고 있다. 유럽경제사회위원회는 담수 및 해양 자원을 보호하고 다양한 차원의 물 위기에 대응하는 EU 블루 딜(EU Blue Deal)을 제시했으며 향후 5년 동안 물 회복력 이니셔티브가 새 유럽위원회에서 핵심 의제로 논의될 것이다.
신유목 시대와 임시 사회의 부상
수력 인프라에 묶인 인류의 거대 도시가 앞으로도 대기천과 홍수, 가뭄, 폭염, 산불, 허리케인을 극복하는 서식지로 남을지는 미지수다. 높은 인구밀도가 특징인 도시 수력 문명은 과거의 온화하고 예측 가능한 기후에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오늘날 급속히 온난화하는 지구에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규모 기후 이주는 이미 시작되었다. 유엔난민기구는 지난 14년 동안 기후 기상 이변으로 연평균 2100만 명이 강제 이주했으며 2050년이면 기후 난민이 12억 명에 이를 수 있다고 추정한다. 인구통계학 연구들은 향후 45년 동안 미국인 12명 중 1명은 가뭄과 폭염, 화재에 취약한 미국 남부를 벗어나 서부 산간지대와 북서부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한다. 세계 인구 상당수가 기후 위험 지역에서 벗어나 살기 좋은 온화한 기후를 찾아 움직이며 새로운 유목 시대의 도래를 알리고 있다.
인류의 대이동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설정한다. 홀로세의 거주 특징이 긴 기간의 정주 생활과 짧은 기간의 이동 생활이었다면 인류세에는 수권이 정하는 속도에 따라 짧은 정주 생활과 긴 이동 생활이 자리 잡을 것이다. 기후변화에 순응해 나가면서 향후 50년 이내에 이주 경로 및 패턴의 변화에 보조를 맞출 ‘임시 도시’의 출현을 목도할 것이다.
새로운 유목 생활의 부상은 우리 종을 새로운 거버넌스와 경제생활의 틀로 이끌고 정치적 경계와 국가 주권, 시민권에 대한 개념도 바꾸고 있다. 모든 사람이 평생 주권국가의 보호 아래 하나의 고정된 지리적 공간에 소속되는 세상은 점차 과거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글로벌 기후 여권 발급에 대한 논의가 탄력을 받고, 기후 조건과 지역 생태계와 밀접하게 연계되는 생태 지역 거버넌스가 확대될 것이다.
진보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거주 불능 지구에 대한 암울한 전망이 넘치지만 희망이 없지는 않다. 키워드는 회복력과 적응성이다. 호모 사피엔스와 그 조상들은 빙하기와 간빙기를 오가는 급격한 기후 변화 속에서 살아남은, 지구상에서 가장 적응력이 뛰어난 종에 속한다. 뛰어난 두뇌와 언어 능력,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는 능력, 지식을 공유하고 미래 세대에 전수하는 능력, 집단 협력을 장려하는 공감 충동 덕분에 인류는 기후의 극적인 변화 속에서 살아남고 번성할 수 있었다. 이런 적응성과 성숙한 생명애 의식이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겪고 있는 물의 행성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도록 도울 것이다. 지금까지 해 온 방식대로 자연을 고갈시키고 굴복시킬 것인가, 아니면 생명의 원천인 수권에 우리 인간 종을 다시 적응시키고 생명 공동체에 합류할 것인가? 미래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출처: 민음사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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